카페 문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며, 승관은 잔뜩 구겨진 얼굴을 펼 생각도 못 하고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아이, 씨... 장난하나... 굳게 닫힌 카페 문에는 괴발개발 휘갈겨 쓴 듯한 메모만이 덩그러니 승관을 반기고 있었다. '개인 사정으로 쉽니다.' 어떤 부연 설명도 없이, 무슨 사정인지 짐작할 수도 없게 짧은 안내문 때문에 더 약이 올랐다. 한두 번도 아니...
교수님이 호명하는 이름의 첫 글자가 서와 신을 거쳐 박까지 왔을 때 나는 잔뜩 긴장해서 허리를 쭉 폈다가 다시 한껏 웅크리며 입술을 삐죽였다. 아주 지각이 습관이지, 어? 입술을 앙다물었다가 놓고, 어떻게 목소리를 변조해야 교수님이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갈까 생각하고 있는 동안 교수님은 쉬지도 않고 거침없이 이름을 불렀다. "부승관." "넵!" 깜짝이야. 나...
현관에 들어섬과 동시에 승관은 반사적으로 몸에 힘을 주고 살짝 움츠렸다. 저보다 한 뼘은 큰 키와 덩치로, 여전히 작은 강아지인 양 온몸으로 달려들어서 잘 다녀왔냐고 발을 동동 구르며 환영해주는 민규의 육탄공격을 버티기 위해서. 하지만 눈까지 질끈 감고 준비했는데도 집안은 잠잠했다. 승관은 슬며시 고개를 빼고 거실을 살폈고, 소파에 앉아서 팔짱을 끼고 저를...
지훈은 제 앞에 놓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초조하게 들이켰다. 나란히 앉은 준휘의 아메리카노는 아직 반도 넘게 남아있는데, 지훈의 컵은 바닥이 드러나기 직전이었다. 잠시 핸드폰을 보던 준휘가 지훈이 쥐고 있는 빈 컵을 바라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피곤해? 오늘 괜히 만났나? 지훈은 얼른 고개를 저으며 컵을 내려놓았다. 그 때문이 아니었다. 물론 피곤하지 않다고...
으, 씨발. 승관은 절로 소름이 돋는 팔뚝을 아무렇지 않은 척 긁으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잔을 들었다. 선창하며 건배를 제안한, 승관을 소름 돋게 한 목소리의 주인공인 민규도 일부러 빤히 승관을 바라보고 눈을 찡긋거리며 웃었다. 얼굴을 한 대 치고 싶다는 생각이나 하면서 승관은 벌컥벌컥 맥주를 들이켰다. 친구가 먼저 '술 마시러 올래?' 하고 전화했을 때,...
아, 죽겠다. 석민이 젖은 휴지처럼 소파에 찰싹 달라붙어서 기운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안색이 진짜 금방 죽을 사람처럼 보여서 조금 마음이 흔들렸지만, 스멀스멀 고개를 드는 연민의 감정을 애써 꾹꾹 눌렀다. 정신 차려, 부승관. 금방 죽을 '사람'이라니. "엄살 좀 부리지 마." "..." "피 안 먹어서 죽었다는 뱀파이어가 어딨...
1.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며, 민규는 습관처럼 '승관아, 나 왔...' 하고 인사하다가 현관을 내려다보고 불길한 예감에 말끝을 흐렸다. 분명히 아침까지는 멀쩡하게 가지런히 놓였던 신발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다. 설마, 또. 허리를 굽혀 신발을 정리하고 나서 구두를 벗고 거실로 발걸음을 향한 순간, 거실 꼴을 보고 민규는 경악에 차서 입을 떡 벌렸다. 사실 ...
아, 오늘 이상하네. 순영은 앞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원우를 자꾸만 흘깃흘깃 훔쳐보며 맥주캔을 홀짝였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한 잔 하자고 가볍게 물었는데 원우는 냉큼 집에서 뒹굴던 그대로 후드티에 슬리퍼 질질 끌고 편의점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진짜 편한 차림으로 아무렇게나 나왔는데도 저렇게... 순영은 괜히 머리를 벅벅 긁...
석식을 먹고 야자 하러 가기 전에, 습관처럼 동아리실에 들렀다. 혹시나 동아리실에 사람이 있으면 좀 놀다 가고, 아니면 잠시 누워서 잠이라도 잘까 하고. 그런데 동아리실 문을 열자마자 뜻밖에 꽤 많은 사람이 북적이는 거에 일단 놀랐고, 그 후 머리 위로 작은 공 같은 것들이 요란스럽게 날아가고 있어서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뭐 해? 대상을 특정한 질문이 아...
탁, 탁. 담뱃갑을 왼손바닥에 몇 번 부딪쳐 보았다가, 엄지와 검지로 쥐고 빙글빙글 돌려보았다가, 의미 없는 내 손짓에 담뱃재들이 시멘트 위로 마구 흩날려서 이맛살을 살짝 찌푸리고 아직 반의반도 비지 않은 담뱃갑을 다시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첫 달에, 학원 옆 골목길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연기를 마구 내뿜으며 너구리굴을 만드는 수강생들...
테이블 밑에서 손끝이 아주 살짝 맞닿았다가 금세 떨어졌다. 다들 민규 노트북으로 어제 새벽에 했던 EPL 하이라이트를 보느라 정신 팔려 있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괜히 손을 잡은 순간 훅 달아오르는 공기를 다른 사람도 느끼고 둘의 사이를 눈치챌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서로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둘 다 애꿎은 옷자락만 만지작거리다가, 조금 대담하...
I have spread my dreams under your feet Tread softly because you tread on my 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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